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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8, 2024

고려비색 (高麗秘色) : 비 갠 뒤의 먼 하늘 푸른빛

고려비색 (高麗秘色) : 비 갠 뒤의 먼 하늘 푸른빛

고려비색, 색채에 대해 공부하며 색채 고유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심리학적 반응에 대해 포스팅을 하고 있다. 색상의 기원이 보통 고대 이집트인 경우가 많다. 훌륭한 인류적 유산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우리만의 색상은 무엇일까 한국인으로서 우리 안에서도 가치를 찾아볼수 있겠다 싶어 찾아본 색체가 고려비색 이다.


어두운 것 같으면서도 어둡지 않고,
화려한 것 같으면서도 결코 화려하지 않고,
넘치는 것 같으면서도 절대 넘치지 않고,
한 가지 색인 듯 한데 자세히 들여다 보 있으면
오만가지 색깔이 다 들어 있음을 본다.

먼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제공한 고려청자를 감생해보자

고려비색이란

고려청자의 색상을 표현할때 은은하면서도 맑은 비취색을 띤 색상을 말한다.
밝고 은은한 녹색에 가까운 빛깔로서 고려 시대 청자에 쓰인 품질이 우수하고 유층에 작은 기포가 꽉 차 있어 반투명하며 밝은 담녹색(淡綠色)을 띠는 회청색(灰靑色) 유약의 색을 가리킨다. 즉, 고려청자의 비색은 마치 아름다운 비취 옥색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비색의 역사

고려청자

청자의 시작은 중국이다. 중국의 영향으로 탄생한 청자는, 중국청자의 전성기였던 송나라 청자보다도 품질 면에서 월등히 앞서게 되었다.
고려 인종 1년(1123)에 고려를 방문했던 서긍(徐兢)은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 고려청자를 “사기그릇의 빛이 푸른 것을 고려인들은 비색이라 부른다. 근년에 와서 제작이 정교해지고 유색이 더욱 아름답다”고 평가한 바 있다

고려청자 상감기법

예리한 조각칼로 무늬를 파낸 다음 그 부분을 다른 색의 흙물을 메워 넣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붓에 흙물을 묻혀 그림을 그리는 철화나 퇴화기법보다 무늬를 훨씬 세밀하게 표현 할 수 있고 표면도 매끄럽게 할 수 있는 기법입니다
점토는 수분이 증발하면서 수축하기 흙과 유약의 수축 팽창률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표면이 갈라지는 빙열이 생긴다. 이 또한 고려청자의 미학이다.

불교

고려는 불교의 문화적영향을 많이 받았다. 고려비색은 불교와 관계가 깊을수 밖에 없다. 불교 의식에서 사용되는 용품들이 고려비색으로 제작 되었다.

고려비색은 고려시대 귀족 사회에서 지위와 부의 상징이었다. 섬세하고 복잡한 과정으로 인해 고려비색은 매우 귀한 물건이었으리라.

쇠퇴기

고려 무신집권 시기에 고려청자의 양상은 급격히 퇴조해 갔다. 몽골침략에도 잘 유지되었던 고려청자(고려비색)이 내부의 정치 혼란으로 퇴색되어 버린 것이다.
이후의 고려청자는 거칠고 두꺼워지며 밝은 유약의 비색이 조금씩 어두워지면서 문양도 퇴보해 가다가 이후 조선초기로 넘어가며 고려비색의 비법은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의 불교를 배척하고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불교적 색체가 강한 고려비색의 힘도 쇠퇘하지 않았나 싶다.
조선시대로 넘오오며 고려비색은 사라지고 대중화된 조선의 백자가 주를 이룬다.

고려비색의 광학

고려비색의 가장 큰 특징이 광학적인 면에 있다. 청록색 위에 투명한 유약을 올렸으나 완전벽한 투명은 아니다 유약 자체의 색상과 본연의 청록색이 중첩되면서 매우 수려한 깊이감이 만들어 진 것이다.
빛의 반사 와 흡수의 벨런스가 아주 절묘하다는 표현이 적합할까?

그렇다면 디지털 색상계에서 비색은 어디쯔음일까

디지털 색상계를 보면 녹색계열에서 채도가 빠진 감흥이 없는색상이다.
비색이 단순한 색상이 아닌 이유이기도 하다. 고려비색은 매우 광학적 중첩된 깊이감을 가진다.

zoinsight

고려비색은 그 맑고 투명한 유약 아래 다양한 빛의 반사와 굴절을 통해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색상이라기 보다 힙한 감성이었다.

실은 비색에 대한 깊이있는 포스팅을 하기엔 아직 인사이트가 부족함을 고백한다. 우리만의 고유의 색상명이 있다는 사실에 고려비색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으나 디지털로 고려비색의 미학을 설명하기엔 여간 어렵다. 조만간 보강된 포스팅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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