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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 2024

유교와 계몽주의

유교와 계몽주의

15세기 세계의 최강국은 중국이었다. 그러나 대항해 시대와 산업혁명을 지나 서양은 이후 5세기동안 세계의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 많은 역사학자들의 연구와 저서가 있지만 독서를 하던 중 인상적인 의견이 있어 블로그로 남겨보기로 하였다. 유교와 계몽주의로 대변되는 아시아와 서양의 발전속도에 관한 글이다.

대한민국 이전의 조선은 전형적인 유교국가로서 조선 후기부터 유교에 대한 맹목적인 근본주의로 빠져버린 사상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글을 작성하였다. 하지만 유교의 이타적 이념은 긍정적인 부분이라 생각한다.

유교

온고이지신으로 대변되는 유교의 기본철학은 옛것의 존중이자 숭배이다. 기원전 살았던 사상가 공자의 이야기를 2천년이 지난 오늘도 의미를 찾아 확대 해석되고 재생산된다.
1995년 한,중,일 삼국의 유교의 사상적 가치에 대한 인식조사 결과가 인상적이다.

  • 한국: 극정 90%
  • 중국: 긍정 22%
  • 일본: 긍정 63%

특이한 지점은 유교의 종주국 중국의 유교에 대한 긍정평가가 22%라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모든 문화를 부정해 버린 문화대혁명의 결과 이지 싶다.

일본은 63% 로 높은편이지만 역시나 우리보다 낮다 메이지유신을 지나며 철저한 서구화를 바탕으로 유교의 사상적으로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유교 사상의 좋고 나쁨을 떠나 한국의 90%가 넘는 맹목적인 유교근본주의는 반대 한다. 주자학을 바탕으로 조선초기는 번성 하였으나 근본주의로 빠진 조선 후기는 옛것이 무조건 옳아 쇄국정책으로 일관하여 나라를 뻬았기게 되는 원인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공자

B.C 551-479, 중국 춘추시대 말기의 대 사상가이며 교육자로 유교의 개조(開祖)시며 성인으로 일컬어진다. 공(孔)은 성이고 자(子)는 남자의 미칭(美稱)으로 ‘선생’ 의 뜻이며,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이다.

공자는 노(魯)나라에서 인(仁, 인간애), 의(義, 의로움), 예(禮, 예절) 등을 중심으로 사회 각 계층의 도덕적 행동을 강조한 인물이다.

유교의 핵심가치

  1. 인(仁): 인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2. 의(義): 정의롭고 올바른 행동
  3. 예(禮): 예절과 의례를 중요시하는 유교의 가르침
  4. 지(智): 지혜를 의미
  5. 신(信): 사회적 약속과 의무를 신뢰성 있게 수행해야 한다는 유교의 교리

계몽주의

계몽주의는 18세기 유럽에서 발생하여 지적, 문화적으로 이성과 과학적 사고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개선하고자 하였다. 전통적 권위, 종교, 왕권에 도전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강조한 사상이다.

그리스와 로마, 그리고 중세 천년간의 종교로 인한 암흑기를 거쳐 그리스 로마시대의 사상이 떠오르며 르네상스를 이르게 되었지만 이들은 고대에 머물지 않았다.
계몽주의 철저한 자기부정으로 옛것으로 부터의 해방적 사고를 바탕으로 대항해시대와 산업혁명으로 성장한것이라 생각한다면 너무큰 확대해석일까?

아래의 그래프는 기원후 부터 주요국가의 총생산의 변화를 확인할수 있는데, 짖은파란색의 유럽의 그래프를 보면 계몽주의가 확산 되었던 1800년대부터 가파르게 상승되는것을 확인 할 수 있다.

그에비해 16세기까지 최강국이었던 청나라는 반대의 역성장을 일으킨다.
아래 붉은 청나라 생산량과 유럽의 생산량 그래프가 만나는 지점이 아편전쟁(1840)년대의 이다.

옛것은 사람들이 그 위에서 최상의 길이 무엇인지 찾을수 있다는 점에서 준중 되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최상의 길을 찾고나면 사람들은 오직 그 방향으로 나아가 진보를 이루게 된다.
따라서 ‘고대는 세상의 청년기’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세상이 오래되었다는 점은 오히려 오늘이야 말로 진정한 고대이다.
우리가 현재부터 역으로 계산해서 고대라고 말하는 그런 시대는 진정한 의미에서 고대가 아니다.

프랜시스 베이컨

인사이트 ;유교와 계몽주의

유교와 계몽주의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유교 와 서양을 대변하는 계몽주의 사상에 대해 각 문화들의 생산력에 얼마나 영향을 주었는지 짧게 알아 보았다. 물론 확대해석일수 있겠지만 계몽주의가 널리 전파될때 유럽은 가히 드라마틱한 생산성의 성징이 시작 되었다.

계몽주의를 기반으로 옛것으로의 탈피와 재해석의 노력은 생산성의 성장을 부르게 된것이라 본다. 반면 옛것을 숭배하는 유교적 가치관이었던 청나라와 조선은 근대화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 그에 반해 일본은 유교와의 거리두기가 근대화에 성공요인이 될수 있었으리라.

2024년 서점에 방문하였다. 50에 읽는 논어, 맹자, 등의 책들이 눈에 띄인다. 지난 1995년의 한, 중, 일 유교에 대한 인식 조사에 크게 다르지 않다.

아직 대한민국은 유교의 국가이다. 매년 설과 추석에 온 국민이 돌아가신 조상에게 절을 하러 천리길을 마다않고 매년 고행의 길을 택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문인지 , 625 때문인지 철저한 역사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 없었던것이 아닐까? 2000년전의 사상가의 논리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사상적 가치를 대변할수 있을까?
조선 500년 과 이후 100년 우리는 유교에 얼마만큼 자유로운가?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철저한 자기부정을 통한 성찰후에 극적인 성장이 있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자면 이 글은 대한민국의 유교근본주의를 꼬집어 보고자 다소 비판적인 어조를 사용하는것을 감안해 주시라. 어설픈 역사지식으로 역사관련 인사이트를 써내려 가다 보니 글의 빈약함을 인정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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