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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 2024

멜랑꼴리 파랑 ; 아! 멜랑꼴리하네~

멜랑꼴리 파랑 ; 아! 멜랑꼴리하네~

색채에 대해 인문학적 인사이트를 블로그로 연재해 보겠노라고 시작한 색체인사이트는 갈수록 글의 난이도가 높아지고 있다. 포스팅을 위해 다양한 색상을 찾던 중 얼마전 프러시안 블루를 들여다 볼때 글이 난이도가 높아 겁이나 애써 지나쳤던 독일의 멜랑꼴리 파랑에 관해서 이다.

색채라기 보다 19세기초 독일인의 낭만주의적 심리적 상태를 표현하는 색채인듯 보인다. 19세기 독일을 중심의로 영국의 산업혁명, 프랑스의 혁명 등 계몽중의 를 기반으로 발전하는 주위 국가를 바라본 19세기 독일의 젊은이들은 이성적 합리성과 보편적 질서를 거부하고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낭만주의 를 선택한다.

멜랑콜리 파랑의 역사

프러시안 블루

파랑은 상당히 독일적이다. 역사적으로 파랑은 오랫동아 아주 귀한 색에 속했다. 청색 염료가 금보다 비쌌던 시절도 있었다. 18세기 프로이센왕국의 염료 기술자였던 요한 아코프 이스바흐는 ‘프러시안블루’ 를 개발한다. 이는 ‘베를린블루’라 불리기도 한다. 이후 프로이센 군복이 프러시안 블루를 사용하게 된다.

인디고블루

19세기 말 , 독일 뮌헨대학의 교수였던 아돌프 폰 베이어는 ‘인디고블루 ‘ 를 화학적으로 합성하는데 성공한다. 바스프 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인디고블루 를양산 한다. 미국으로 넘어간 인디고 블루는 튼튼한 천에 인디고블루로 염색하면 값도 쌌고 오래 입을 수 있었다. 그러나 천이 염료를 완전히 흡수하기엔 너무 두꺼워 염색이 완전하지 않았다. 이렇게 ‘청바지’가 탄생하게 된다.

멜랑콜리

멜랑꼴리란 무엇인가

멜랑콜리(Melancholy)는 깊은 슬픔이나 우울함을 느끼는 정서 상태를 가리키는 용어로 고대 그리스 의학에서 유래하여, 그리스어로 멜랑(검은색)+꼴리(담즙) 의 합성어 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체액을 네가지로 정의하고 그중 흑담즙이 과하면 우울증이 발병한다고 보았다.

멜랑콜리는 우울depression 이라는 정신병리학적 전문용어로 대체된다.

그러나 15세기경 이탈리아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그리스의 플라톤의 철학을 전파했는데 피치노는 멜랑콜리를 창조적 개인의 특징으로 설명했다. 피치노는 “창조성은 멜랑콜리에서 나온다”고 주장 하였다.
바로 이때부터 우울과 슬픔은 예술가의 숙명이 되고 만다.

현대에도 멜랑꼴리

지극히 개인적인 주장이지만 27세에 사망한 천부적인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떠오른다. 지미핸드릭스, 짐 모리슨, 에이미와인하우스 등의 우울감 과 자기파괴에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고뇌에 빠진 독일의 낭만주의자들은 현재에도 이어져 오는 데 여러 밈으로 유명한 스타트랙의 이미지도 그러하다.

인기 드라마 스타트랙

멜랑꼴리 파랑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이 발표될 즈음 파랑색은 젊은이 사이에 크게 유행하는데 독일 낭만주의자들은 파랑을 ‘멜랑콜리 색’ 의 상징으로 여겼다.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화가인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그림에서 ‘멜랑콜리 파랑’은 특히 두드러진다.

안개바다위의 방랑자 , wikipedia

독일의 낭만주의

독일 낭만주의 의 시작은 18~19세기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정치적 경제적으로 후진성을 면치 못했다. 1648년 ‘베스트팔렌평화조약’ 때문이다. 30년 전쟁이 끝난 후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고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제국으로 쇄퇘한다. 독일 지역은 300여 개의 국가로 나뉘어진다 다른 국가들은 베스트팔렌평화조약으로 외교적 주권을 갖는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로 발전해갔으나 잘게 쪼개진 독일만은 예외였다. 독일이 통일된 근대국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1871년이다.

일본의 낭만주의

한자 문화권에는 ‘낭만’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급조된 단어다. 낭만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한 이는 나쓰메소세키 이다. 소설가이자 영문학자였던 소세키는 1907년에 자신이 펴낸 ‘문학론’에서 ‘러망’이라는 단어를 ‘낭만’으로 번역했다.

한국의 낭만주의

낭만’은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제대로 자리 잡는다.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 의지를 상실한 지식인들에게 개인주의적이고 퇴폐적 유미주의 세계를 추구하는 ‘낭만주의’는 식민지 현실에서의 도피를 정당화해주는 그럴싸한 이념이었다.

한국의 낭만주의는 광복 후에도 계속된다. 625전쟁과 분단, 그리고 계속되는 가난을 잊기 위한 도피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이후 낭만주의는 한국식 예술지상주의로 진화하여 군부독재 시절의 참여문학대 순수문학 논쟁에서 순수문학 진영의 이론적 토대가 된다.

zoinsight

인사이트를 얻게된 김정운의 ‘창조적시선’에서 2000년대 풍요와 민주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한국의 낭만주의는 사라졌다 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이 지점에서 아직도 존재하는 도피성 낭만주의를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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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의 정치적인 난장에도 예전처럼 지식인들의 움직임들은 매우 더뎌 보인다. 아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나? 한국의 지식인들은 근본주의적 과 유희적 예술로 이성적 합리성 과 보편적 질서를 회피하게 되는게 아닌가 싶다.

마무리로 이 책을 읽고 서평아닌 내 느낌을 이야기 하자면

김정운 교수의 통찰이 포함된 지식적 교만에 감사한다.
우리의 지식인 그들은 좀더 교만했으면 좋겠다.
겸손 과 서양기반의 이론들 뒤에 숨어
무기력에 대한 자기정당화가 너무 느껴지지 않는가.

이상의 ‘날개’ 에서 처럼 박제가 되버린 천재성에 우울해 하거나 아니라면 스스로 존재감와 영달을 위해 이성을 박제 해버린것은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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