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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 2024

셀레그린: 비소의 색체

셀레그린: 비소의 색체

세인트헬레나 섬은 워털루 전투의 패배 이후 영국이 나폴레옹을 유배시킨 곳이기도 하다. 그는 유배 6년차에 사망한다. 주치의는 일단 위암을 의심했지만 20세기에 머리카락을 검사해 보니 많은 양의 비소가 검출되었다. 나폴레옹이 유배되었던 작고 습기 찬 방에 셀레 그린을 포함해 파릇파릇한 녹색의 벽지를 발라놓았음이 발견 되었다. 이는 영국에 의한 독살설이 퍼진다.

셀레그린의 발견

1775년 스웨덴의 과학자인 칼 빌헬름 셀레는 비소를 연구하다가 우연히 녹색의 화합물 비산구리를 발견한다. 이 안료는 밝고 생동감 있는 녹색을 띠고 있었으며, 이전에 사용되던 녹색 안료들과 비교했을 때 훨씬 더 선명하고 지속적이다. 그는 녹색 안료와 염료에 목마른 산업에 상품 가치가 있으리라 깨달았다. 그래서 즉각 대량생산에 들어간 이 녹색은 대 히트를 기록하게 된다.

당시 유럽 패션의 본고장 파리에서 널리 유행을 타면서 paris green 이라는 이름으로 전 유럽으로 이 독극물로 만든 영롱한 녹색은 퍼져 나가게 된다.

paris green 안료 – wikipedia

셀레그린 확장

셀레그린은 천이나 벽지, 조화, 종이 드레스 원단의 염색, 화가의 염료, 심지어 음식의 색소에도 쓰였다. 1858년 까지 약 260,000제곱미터의 벽지가 비산구리로 염색되어 영국의 집, 호텔, 심지어 아이방의 바닥제로도 사용 되었다. ‘더 타임즈’ 에 따르면 1863년까지 500~700톤의 셀레 그린이 영국에서 생산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의 녹색드레스 – wikipedia
Georg Friedrich Kersting 의 
여성 자수 (1812) – wikipedia

셀레그린의 독성문제

초록록색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은 곧 피부가 붉게 일어나고 수포가 생겼지만 한번 퍼진 유행은 멈추지 않는다. 파리에서 유행하여 유럽 전역에 퍼지게 되는데 옷, 벽지, 바닥, 심지어 음식의 색소로도 활용되어 전 유럽은 비소중독에 노출된 샘이다.

황산 아세나이트는 비소를 함유하고 있으며, 이는 흡입하거나 섭취할 경우 인체에 매우 해로운 독극물이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셀레그린을 사용한 벽지에서 비소가 공기 중으로 방출되어 실내 환경을 오염시키고 거주자들에게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는 보고가 점차 증가하게 된다.

셀레그린의 사망사고

19세기 중반, 셀레그린에 의한 중독 사례가 점점 더 많이 보고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벽지, 카펫, 그리고 직물과 같이 대량으로 안료가 사용된 환경에서의 중독 사례가 발생하는데. 비소 중독의 증상으로는 구토, 복통, 설사, 심한 경우에는 사망한다 . 이러한 사례들은 공중 보건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최종적으로는 셀레그린과 같은 유독한 안료의 사용을 제한하게 된다 .

나폴레옹 사망사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사망과 셀레그린이 연관되어 있다는 이론도 있는데. 나폴레옹이 유배 생활을 했던 세인트 헬레나 섬의 롱우드 하우스에는 온통 그린색으로 연출된 벽지, 카펫으로 인테리어 되어 있었다. . 일부 연구자들은 나폴레옹의 사망 원인 중 하나로 비소 중독을 제시했으며, 이는 롱우드 하우스의 벽지에서 비소가 방출되어 나폴레옹이 장기간 노출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고 추정한다 .
또한 유배되었던 세인트 헬레나 섬은 습도가 높아 셀레그린의 비소성분이 습도에 의해 덕성이 더해졌다는 추정이다.
그러나 공식적인 사망원인은 위암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유해는 1840년 5월에 영국의 동의를 얻어 프랑스에 반환되어 현재 파리의 앵발리드에 안치되어 있다.

결론

나폴레옹이 셀레그린 즉 비소에 의한 중독사라는 주장이 있고 당시 비소중독은 매우 흔했으며 죽음에 이르는 사망원인으로는 증명할수 없다 라는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주목할 점은 당시 비소중독이 만연했다는 점은 확실하다. 컬러가 권력이던 시절 매우 영롱한 그린색상은 유럽 셀럽들을 유혹하고 유행이 되기에 충분 하였다. 특히 프랑스로 넘어가 전 유럽으로 퍼지기 까지 특히 셀레그린을 이용한 벽지, 특히 옷감, 벽지 등을 제작하는 노동자는 이유없는 죽음이 많았으리라 추측해본다.

지난글에서 처럼 서양에서 녹색은 공포와 경시의 대상이다. 무슬림이 녹색을 사랑했고 십자군 전쟁당시 무슬림의 대척점이었던 유럽인들은 녹색을 공포와 혐오의 대상 이었으리라 짐작한다. 더불어 셀레그린에 의한 전 유럽인의 비소중독으로 녹색에 대한 거부감은 더욱 강화된 것이라 생각한다.

https://www.zoinsight.com/%ec%b4%88%eb%a1%9d%ec%9d%98-%ec%83%89%ec%b1%84%ec%8b%ac%eb%a6%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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