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지~ 의 어색한 모 정치인의 발음이 부정적인 기억이 연상 되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색이다. 따뜻하고 경쾌하다. 상상할때 입안에 침이 고이는 미각적으로 상큼하다. 색이 과일에서 이름을 따왔을 테지만 그보다 궁굼 했던점은 네덜란드 오렌지 이다. 붉은색과 노란색을 혼합해야하는 어려운색이 상징색이 한 나라의 국가의 상징색이 된것은 이례적인 사례이다.
역사적
오렌지의 시작 은 역시나 고대 이집트가 시작이다. 오렌지색 안료가 무덤 벽화에 사용 되었던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때에는 우리가 아는 선명한 오렌지색이 아니기에 본격 시작은 유럽의 중세 때 부터이다. 오렌지는 붉은색과 노란색의 혼합색으로서 다소 늦게 부터 사용되었다. 오렌지색의 역사를 따져볼때 등장해야할 국가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 오렌지
네덜란드의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Oraje-Nassau 가문의 빌럼1세 이야기를 해야겠다.
16세기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에스파냐 펠리페2세의 카톨릭 정책이 지금 네덜란드 지역 신교자들의 탄합을 넘어 학살까지 이르자 독립의 갈망은 켜져간다.
현 네덜란드 지역의 사람들은 자유를 외치고 독립투쟁을 벌였고 그 중심에 빌럼1세가 있다. 그 가문 이름이 ‘Oraje-Nassau’ 가문이다. Oraje 는 영어로 Orange 즉 오렌지다.
독립전쟁은 1581년 7월에 승리로 끝나고 네덜란드 독립이 선언된다. 이후 스페인의 국력은 쇄퇘하고 네덜란드는 해상강국으로 거듭나게 된다.
오라네 가문은 이후 몇 세기에 걸쳐 유러브이 정치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빌럼의 후손은 여전히 네덜란드의 왕족이다. 2013년 부터 현임 빌럼알렉산더 국왕이 재위중이다. 네덜란드인은 역사와 국가 그리고 왕족의 상징색에 강한 자부심을 품게 되었다.
자 , 내 글은 딱! 반발짝만 더 나가보는 글이다.
그렇다면 왜 네덜란드 왕조 오라네 왕조는 오렌지색을 상징색으로 사용하였는가.
오렌지 의 어원
채소 과일 등의 색상명은 언제나 그 색상명의 어원이 궁굼해 진다. 그렇다면 오렌지의 어원은 무엇인가
먼저 오렌지 과일의 시작을 추적해 보았다. 오렌지는 중국 남부 지역에 자생하는 과일(nāraṅga) 이었고 이 과일이 실크로드를 통해 아랍 과 유럽으로 전파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중세 라틴어에서는 ‘aurantium’ 또는 ‘arangia’로 불렸고, 이는 중세 프랑스어로 ‘orenge’ 또는 ‘orenge’로 변형되어 16세기 지중해 연안에서 인기를 끌었고 프랑스에도 오렌지를 재배 하였고 오렌지를 재배하던 지역을 오렌지 즉 프랑스어로 오랑주로 불렸을 것이라 추측한다.
프랑스의 오랑주 공국 (Orange)
프랑스 남부에 위치했던 조그마한 공국(중세 영주가 통치하는 지역) 였고 수도는 오랑주(네덜란드어 오라녀) 였다. 이곳은 신성로마제국 시대에 백작이었던 오랑주를 공국으로 승격시키면서 오랑주 공국이 되었다. 1515년 독일의 가문 나사우 가문의 헨드리크3세와 오랑주 가문의 클로드 드 샬롱 과 결혼하게 되었고 이후 나사우 가문이 오랑주 공국을 상속 받는다. 이후 빌헬름 폰 나사우딜렌부르크 가 상속받게 되는데 이사람이 네덜란드의 국부 빌럼1세 이다.
즉, 오렌지를 재배하던 지역에 독일계 가문이 지역의 영지를 이어받고 스페인에게 지배받다가 독립을 이끌어 내어 네덜란드가 된것이다. 네덜란드를 영어로 더치 라 불리는 이유가 주로 독일어를 사용해서 그렇단다. 왜 네덜란드식 페이 방식이 더치페이인지 공부하면서 더불어 알게 되었다.
프랑스 남부의 오랑주 지역의 영주가 현 프랑스 북부 지역으로 이주하여 독립까지 이루었는지에 대한 공부는 아직 덜되었음을 고백한다.
실제로 네덜란드엔 나누어 지불하는 이름바 ‘더치페이’는 관행이 없다. 한국 포함 일부 국가에서만 표현하는 방식이다. 17세기, 18세기 네덜란드와 영국과의 경쟁에서 영국과 영국과 친한 국가에서 ‘네덜란드인은 인색하다’ 라는 편견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는 영국과 친한 일본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추측한다.
네덜란드 인의 오렌지 색 사랑
네덜란드의 국가 상징색이 왜 오렌지가 되었는지 설명하였다. 네덜란의 오렌지색에 대한 애정은 가히 남다르다. 당근을 예로 들어보자, 남미가 원산지이며 쓰고 질긴 구근인 당근은 17세기 이전에 자주색 또는 노란색이었다. 하지만 이후 100여년 동안 네덜란드 농가에서 선택 교배를 통해 오렌지색 품종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 파란색, 흰색, 빨간색의 조합인 네덜란드 국기는 원래 빌럼1세의 상징색을 기려 파란색, 흰색, 빨간색과 오렌지색의 줄무늬였다. 하지만 당시 선명한 오렌지색 염료를 찾을수 없어서, 빨간색을 대신 사용한 것이다.
네덜란드 오렌지의 흔적은 뉴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673년 네덜란드는 미대륙을 진출하여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까지 진군 하였고 도시면을 뉴 오라네라 명명했지만 1674년 영국에 패하고 도시와 이름을 영국에 넘기게 된다. 지금의 뉴욕이 뉴오라네가 될뻔 하였지만 뉴욕의 국기엔 네덜란드의 흔적 즉 오렌지색이 남았다.
insight
오렌지로 시작하여 글의 제목을 네덜란드 오렌지로 바꿀 만큼 네덜란드에 대해 공부해 보았다. 우리에게 네덜란드는 예전 월드컵 5:0 패배를 다루기 이전 하멜의 표류기로 유명하다. 하멜의표류기 까지 이야기하기엔 글이 너무 길어 압축해 보자 중국, 일본 간 교역을 위해 출발한 상선에 탔던 하멜은 태풍을 만나 제주도로 표류하게 된다.
잠시 하멜의 보고서에 표현된 조선은 체류기간 40년을 매우 홀대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효종때 북벌을 준비하던 조선은 정보의 해외 유출을 조심한 부분도 있었지만 외국인의 접근에 패쇄적인 입장인 반면 일본 도쿠가와 이에아스 막부는 네덜란드와의 적극적 교역으로 세계 문물과 기술을 받아들여 매우 실용적인 선택을 하였다.
엄청난 은생산량과 네덜란드와의 교역으로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로 성장하게 된다.
은을 통한 일본과 네덜란드의 교역 내용은 이전 글 은 에 좀더 자세히 표현되었다.
칸딘스키
오렌지는 타인에게 필사적으로 위력을 납득시키는 남자 같은 색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