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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 2023

압생트 ; 술의전쟁

압생트 ; 술의전쟁

서양에서 초록에 대해 부정적 심리적 기조에 압생트 라는 술도 영향이 있었겠다.  색상으로서 불렀을때 투명한 연녹색의 공통의 색채인식이 있다. 색상으로서 이해하고 공부해 보자.

압생트란 무엇인가

스위스에서 유래된 술. 주정에 아니스(anise)와 회향(fennel)이라는 향신료와, 향쑥(wormwood)이라는 허브계 약초를[6] 말려 부숴 넣은 후 그 혼합물을 다시 증류한 술이다. 이 상태에서는 무색투명한 색을 내기 때문에 여기에 히솝(hyssop), 레몬밤(lemon balm), 로만쑥(roman wormwood) 등의 허브를 추가로 넣어 색을 침출시켜 녹색(verte)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압생트의 역사

압생트는 완전히 새로운 술은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모에서도 비슷한 레시피로 소독제를 만들어 사용했다.
현대에도 압생트는 약으로 쓰였다. 스위스에 피에르 오프디네프는 고대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환자의 강장제를 조제했다. 20세기부터 판매도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주로 약으로 마셨다. 아프리카에 참전한 프랑스군은 말라리아 치료용으로 쓰기도 했다.

와인을 압도한 압생트

1860년대부터 싼 곡물 알코올로 만들기 시작하면서 곧 압생트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다. 처음에는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오스카 와일드, 에드거 앨런 포 처럼 보헤미안 예술가의 술이라 여겼지만 와인보다 가격이 저렴해 금세 인기가 폭발한다. 19세기 후반 파리에서는 오후 5~6시 사이에 식전주로 주로 압생트를 마시게 되어 이 시간대를 ‘theure verte'(녹색의시간) 불려졌다.  소비량증가도 압도적이다. 1875년 0.04리터였던 소비량이 1913년 0.6리터로 10배가 넘게 압생트의 소비가 증가 하였다.

 

“압생트를 마시면 튤립이 내 다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오스카 와일드

‘압생트와 카페 테이블’, 빈센트 반 고흐, 1853.
압생트와 카페 테이블’, 빈센트 반 고흐, 1853.

 

압생트 중독

영원할 줄만 알았던 압생트의 시대는 오래가지 못한다.19세기말 한 정신과 의사가 압생트를 만들때 사용되는 쓴쑥에 환각과 발작을 일으키는 투우존(thujone)이란 성분이 들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 한다.

1868년 5월4일 <타임> 은 압생트가 프랑스 만큼이나 널리 퍼진 한편 중국의 아편만큼이나 해롭다 는 기사를 내보닌다. 이 ‘에메랄드색 독’을 즐겨 마시는 사람은 운이 좋아봐야 침을 흘리는 멍청이가 되고 아니면 중독되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보도한다. 여성도 압생트의 열렬한 찬미자 가 되고 있다고 썼다.

프랑스 의사들은 압생트가 진짜 독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단순한 알코올 중독과 다른 증상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환각 및 치료 불가능한 광증의 사례가 보고되었다. 압생트의 독성을 확인해가 위해 약쑥 연기에 기니피그를 넣어보니 기니피그는 ‘매우 둔하고 무감각해진 뒤 자빠져 다리를 심하게 떨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라고 연구진은 보고 한다.

1905년 장 랑프레라는 남자가 압생트를 마신 뒤 임신한 부인과 어린 두 딸 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압생트 살인’ 이라는 사건명이 붙었고 3년뒤 스위스에서 압생트를 법으로 금지 시킨다. 프랑스도 1914년 8월 압생트를 금지한다.

‘압생트 살인’ 사건은 향후 압생트의 중독이 아닌 과한 음주로 가 원인으로 밝혀진다. 살인자 랑프레라 는 압생트 말고도 와인, 브랜디, 그리고 더 많은 와인을 마셨다.

억울한 누명 ‘악마의 술’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압생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 지는데 투우존 을 함유하지만 아주 많이 먹어야 유독해지므로, 압생트를 과음한다면 알코올 중독으로 먼저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압생트의 진짜 문제는 55~75퍼센트의 높은 도수였다.  19세기 말 부터 20세기 처 의 사회 격변 탓에 압생트를 많이 마시고 알코올 중독이 늘었다.

스위스 등 일부 국가들의 압생트 애호가들과 여러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압생트에는 해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져 2005년 이후 스위스 부터 해금되기 시작 한다.

현재에도 판매중인 압생트
현재에도 판매중인 압생트

인사이트; 술의 전쟁

먼가 의심스러울때는 돈과 연결하면 이해가 쉬워질수 있다. 19세기말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압생트가 한 연구 의사에 의한 연구결과 에 반응하여 금지령이 전 유럽으로 퍼질수 있었을까.

유럽의’ 와인 업계의 보이지않는 손’ 이라는 가설을 새워보고 정보를 추적해 보았다.
당시 프랑스 보르도는 산업혁명으로 엄청난 와인산업의 성장세에 있었다. 보르도는 17세기에 네덜란드와 교역을 시작으로 대항해 시대에 프랑사의 와인은 세계 각지에 수출되기 시작 한다.
이때 등장한게 압생트다 와인보다 저렴하고 맛도 좋았어서 당시 와인의 소비를 압도 하였다. (19세기 와인과 압생트의 소비를 찾아보려 하였지만 찾지 못하였다.)

술의 산업으로 바라볼때 당시 기득권이었던 와인업계가 떠오르는 압생트를 압살한 것으로 봐도 기괴한 추론은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와인이 술의 시작을 재패하고 산업화의 흐름에 전세계적인 산업으로 확장하였기 때문이다.

초록의 색채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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