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를 거치는 동안 새로운 기술 및 해외 시장발달에 힘입어 영국이 세계최초로 산업혁명을 시작 하게 된다. 산업혁명 시기에 영국은 어떤 시대상황있는지 어떻게 대량생산 과 대량판매의 시장을 탄생 시켜 세계적 경제 를 이룩하는 토대가 되었는지 알아 보았다.
산업혁명 시기 18~19세기 시대 상황
산업혁명을 이야기 하기 전에 1765년 제임스 와트에 의한 증기관이 나오기 위한 흐름과 시대적 분위기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당시 시대상황을 알아보고 넘어가자.
산업혁명의 시작은 해상무역 이었다. 16~18세기 세기 대항해 시대를 거쳐 자원, 무역, 이 확대 되면서 뱅킹 과 노예로 인해 자본과 노동이 당시 해상력의 패권을 장악한 영국으로 모여 생산성이 폭발 하게 되었다.
은 의 색채심리 ; 행동경제학, 생명공학, 역사적 의미 -> 은의 역사부분 참조
노예, 모피무역
이 시기의 무역 성장에서는 대서양 경제의 출현이 중요한다. 대양 간 무역 대부분이 스페인과 포르투갈 의 제국이 중심이었다.
18세기에는 신대륙 에서 금과 은을 채굴해 이베리아 반도 한곳에 몰아서 수출하는 방식으로 대서양 경제애 막대한 역활 이었다.
18세기 동안 대서양 일대에 발달한 삼각무역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실어다가 아메리카 대륙과 카리브 해에 파는것이다. 유럽에서 완제품을 가져와 아프리카 노예들과 교환하고 노예들을 아메리카 대륙에 실어주고 금, 은, 모피를 들여왔다. 영국에 자본이 모이고 인구가 늘고 수요는 폭발했다.
중상주의 ; 애덤스미스 국부론 과 금융제도
산업혁명 시기 자원, 무역이 확대되고 1694년 영국은행이 처음 문을 열었다. 은행이 돈을 만들고 그 돈으로
노예와 금, 은, 모피를 사고파는 3각무역이 엄청난 부를 영국에 안겨주었다.
이때 자본의 개념을 적립한 사람이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이다.
경제 체제는 자동적이며, 지속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 놓여졌을 때 그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종종 보이지 않는 손이라 일컬어진다. 독점과 세금 우선권, 로비 집단, 다른 사람의 비용으로 어떤 경제 일원에게 늘어나는 “특권”은 경제 체제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과,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위협한다.
중상주의 중상주의(重商主義, 영어: mercantilism)는 세계 경제와 무역의 총량이 불변이라는 가정 아래 자본의 공급에 의해 국가가 번영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경제 이론이다. 역사적으로는 15세기에서 18세기까지 유럽의 국가들에서 채택되었던 국내 산업의 보호와 해외 식민지 건설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경제 정책들 역시 중상주의 또는 중상주의적 경제체제라 불린다. 중상주의를 경제 체제와는 별개의 것으로 파악하는 일부 학자도 있으나 대부분 중상주의를 초기 자본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다.
나폴레옹 전쟁(1799~1815년) 의 승리
18세기 산업혁명의 태동기의 영국은 프랑스 혁명을 지나 나폴레옹에 의해 서유럽 전역이 전쟁터가 되었다.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영국연합군에 패패한 나폴레옹은 나대서양의 섬에 유배 되었다.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기간 동안 대프랑스 동맹의 구축하여 결정적으로 나폴레옹 전쟁의 승전국이 되었다.
*런던에 워털루역(전쟁승리 기념)이 있는 이유가 있다. 트라팔가 광장(전쟁승리 기념)도..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식민지 건설에 주력하였고 막대한 식민지와 그곳에서 나오는 자원을 바탕으로 영국 경제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명예 혁명 이후에 정치적인 안정도 보장됨에 따라 영국은 제국으로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다.
산업혁명의 시작 과 전개
이처럼 영국은 강력한 해군력으로 해양 무역의 패권을 장악하며 자본과 생상력이 급증 하면서 수요가 폭발하기 시작 했다. 기존이의 생산방식으로는 수요에 대응은 불가능했다. 시장의 요구는 점점 확대 되어 대량생산, 대량판매의 시장이 탄생 하였다.
증기기관
18세기 초에 이미 등장 하였디만, 그때까진 유용하지 못하였다.
1765년 제임스 와트가 회전식 증기기관을 발명 특허를 출원 하면서 증기기관의 힘을 회전력으로 기계설비에 동력을 공급할수 있게 되었다. 1800년 특허가 만료되면서 산업 경제 및 운송체제 전반으로 증기기관이 두루 확산 되었고 1825년 최초의 증기기관 철로가 부설되어 또 한번의 극적인 발전이 시작 되었다.
그림을 보면 뜨거운 증기가 피스톤(c) 의 상하운동을 거쳐 왼쪽 바퀴 까지 힘이 전달되고 크랭크축(h)으로
회전역이 전달 된다.
현대적인 금융제도
위에서 언급한대로 자본과 생산력, 수요가 모이니 각 지역마다 은행을 자처한 자본가에 의해 겆잡을수 없이 성장 하였다. 규제없는 성장으로 자본시장에 심각한 금융위기를 맞은 후 1826년 금융개역을 실시하고
1844년엔 국영은행제도가 마련되면서 현대적인 신용구조가 출현 하였다.
이 금융제도로 인해 급격한 성장이 가능하였다.
2차산업혁명
산업혁명 시기에 시장이 성장하고 수요가 폭발 하였다. 이제 수요에 맞게 기술이 발전하여 생산과 운송이 발달하고 자본이 축적되었다. 이는 전 유럽에 퍼져나가는 계기가 된다.
1870년 유럽은 영국과 같이 전기,화학,자동차 분야에 현대과학이 적용 되면서 소위 ‘제2차산업혁명’이 시작 되었다.
철은 강철로 진화 하여 생산량이 1861년 12만톤 1913년엔 3,800만톤에 이른다.
독일은 새로운 산업 붐의 중심이 되어 전기제품은 세계무역의 절반, 염료는 세계 무역의 80%를 차지 한다.
상업에도 혁명이 일어났다. 백화점, 대중광고 출현으로 상업이 발달하고 생산성의 향상은 1914년 장기 호황을 맞는다.
그때, 우리는
한국 : 조선
산업혁명 시기 에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는 영국 과 유럽에 비해 한국은 정조대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쇄퇘기에 접어드는데 허수아비 임금 11살 순조의 제위로 19세기를 시작한다.
왕이 어리니 증조할머니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실시한다. 세도정치의 시작으로 길을 걷는다.
문제는 이제부터, 정조가 이루어낸 업적을 모두 30년 전으로 되돌린다.
그리고, 드디어 세도정치의 시작이다. 시작은 안동김씨 였다.
역사에 관심이 생겨 역사책을 들여다 보면 이 시기의 조선이 매우 안타까울 뿐이다.
순조,헌종,철종까지 3명의 임금을 거치면서 60년동안 세도정치거 전개된다 왕권은 약해지고, 왕의 외척가문들에 의해 권력이 독점되었다.
이때에도 성리학이 근본주의로 매몰되면서 서학 과 천주교등 다양한 문화와 서양무역에 대해 강렬한 배타적 신념의 시대사조로 자리 잡는다.
세계가 급변할때 우린 내부적인 갈등으로 몸살을 알았다.
세도정치, 기근, 각 지역에서 난과 농민봉기가 이어졌다. 지도층은 세계의 정세보다 집안의 권세에 집중했던 모양이다.
유럽은 중상주의(상업의 중심) 한국과 중국 은 사농공상(상업이 제일 안중요함) , 이 급변하는 세계에서 정책적 선택의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우리는 결과를 알고 있다.
순조의 어진은 1954년 화재로 불에타 얼굴을 확인할 수 없다.
중국 : 청나라
바로 위에서 언급한대로 산업혁명 시기에 중국은 서양무역을 배척하였다. 그도 그런것이 18세기의 중국은 세계 최강국 이었으니, 영국에서 정성스레 보낸 사절에 무시하듯 대응하였고 1,2차 아편 전쟁을 패배하고 난징조약을 체결한다.
홍콩,을 영국에 넘기고 당시 엄청난 전쟁 배상금에 쇄퇴기를 격는다.
중국의 아편전쟁은 이야기가 크고 길다. 따로 포스팅 할 예정이다.
바로 이 시점이 아시아와 서양(유럽,아메리카)의 패권이 변경되는 시기였다 생각된다.
일본
한,중일, 삼국중 일본만 근대화에 성공 하였을까. 일본도 개항 직전 미국의 개항요구에 패척하는 자새를 취했으나 서양과 전쟁에서 패배 후 불평등 조약에 서명한다. 여기까지는 한국과 중국과 동일한 역사 패턴을 가진다. 이 다음시점부터 메이지 유신을 통해 왕정복고 후 중앙 통일 권력을 확립 하였다.
그리고 구미 열강을 따라가기 위해 개혁을 모색하였다. 부국강병을 내새워 유럽과 미국 근데국가를 모델로 하여 천황이 주도하여 전체주의적 자본주의 와 군사력 강화에 노력한다.
이런 국가기관의 강력한 드라이브는 민중의 반감이 필현적으로 따른다 이때 다시 등장한 이론이 정한론이다. 정한론은 일본이 한국(조선)을 정벌해햐 한다는 신념이다. 내부의 갈등을 외부의 침략으로 배설하는 전략이 400년전 임진왜란과 매우 유사하다. 이순신 장군이 왜 노량에서 목숨을 받치면서 까지 싸우셨는지 역사는 증명한다.
동아시아 에 유독 일본만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화에 성공한 확실한 이유는 아직 확인하바 없다.
다만 몇몇 칼럼에서 3국중 17~18세기 은 수출로 자본이 쌓이고 상업이 발달해 있었다는점
이전의 무역으로 외교감각이 좋았다는 의견들이 있다.
다만 일본은 근대화에 성공하여 산업혁명의 해택을 3국중 가장먼저 확인하고
영일동맹으로 군사, 자금 지원 을 받고 1차세계대전에 차관을 무상으로 털어내는 행운 까지
영국은 일본을 앞세워 러시아를 견제하고 싶었다.
이 포스팅을 공부하며 약간의 공포스러운 기시감이 드는 무엇일까. 우리 역사의 구한말의 세계 정황이
지금의 세계 정황하고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세계 최강국인 영국이 미국으로 바뀌었고 국내는 내부갈등이 상당하다 미국은 일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싶어 하고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동아시아의 맹주로서 입지를 굳히려 하고 있다. (개인사견이 있으니 짧게 마무리)
결론
지금까지 영국 산업혁명 시기에 시작 부터 유럽에 퍼지기 까지 , 그리고 동시대의 한,중,일 은 어떤 역사적 흐름 이었는지 들여다 보았다.
19세기 초~19세기 말 까지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웠던 영국은 식민지 와 그 식민지에서 자원 과 노예의 무역으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하고 시장의 수요는 폭발 하였다. 때마침 기술의 진보로 대량생산이 가능하여 수요를 충족 하였다.
산업혁명 시기에 기술, 자본, 노동력 등 3박자가 요인이 모두 모여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더불어 중국을 중심으로한 아시아의 패권이 유럽과 아메리카로 넘어가는 경계의 시점 이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