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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 2023

[역사 가로보기 ] 1392년 조선 건국과 세계 의 흐름

[역사 가로보기 ] 1392년 조선 건국과 세계 의 흐름

조선 건국 시기에 중국, 일본 또는 유럽대륙은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고 또 어떤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공부하였다.

한국 : 조선 건국

위화도 회군으로 권력을 잡은 이성계는 고려 우왕을 갈아치우고 우왕의 아들인 창황을 옹립후 바로 ‘폐가입진’ 의 명분으로 고려의 마지막 임금 공양왕을 추대한다.
후에 온건사대부 와 급진 사대부의 출돌로 정몽주가 이방원에게 죽고 정도전에 의해 왕씨에서 이씨로 바꾸는 ‘역성형명’ 이 완수 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수창궁에서 즉위하고 조선 건국 한다.

이성계 초상화
조선 태조 이성계. 출처-namu.wiki

만약에 : 1차왕자의 난 없이 요동정벌을 감행 했다면??

역사에 만약이 무의미한것을 알지만 미천한 역사 정보 디자인 블로그를 자처하기에 약간의 흥미를 첨가해 본다. 조선 건국 이후 명나라는 조선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고정도 정도전을 잡아오라고 명하기도 했다.
이런 시기에 정도전은 태조의 지원으로 요동정벌을 계획 한다.
동시에 요동 정벌의 군사력을 보충한다는 이유로 이방원의 사병을 몰수하는 방법을 꾀한다.
이에 이방원은 정도전을 죽이고 이복 형제인 방번과 세자 방석까지 죽여 왕위를 둘째형인 방과에게 양보한다. 그가 조선의 2대왕 정종이다.

여기서 이방원이 왕자의난을 일으키지 않고 군대를 모아 요동정벌을 감행 했다면 어땠을까
조선 건국 시기의 중국은 1399년 혜제가 황제로 있었으나 주원장의 네째아들 주태가 거병을 하여 정난의 변이 발생하고 혜제는 사라지고 주태가 1402년 제위에 오른다.
명나라 초기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여서 조선이 요동정벌을 진행 했다면 …

고구려때의 거대한 영토를 일부 편입할수 잇지 않았을까?

요동반도 지도
요동반도의 위치 . 출처-나무위키

중국 : 명나라

조선 건국 시기에 명나라는 태조 홍무제(본명:주원장)에 의해 원나라를 북으로 정벌하여 중국 대륙 통일 직후의 상황이었다. 1393년 육유 [六諭] 를 반포 하여 주자학을 관학으로 승인 하였다.
육우는 주자학을 교육 지침으로 따르는 것이며 어른에게 효도하는 것이 곧 국가와 조정에 충성하는 일이고 효를 실행하는것이 곧 위정이며 인을 실천하는 기본적 요구이다.이는 조선 건국 과 맞물려 명나라도 건국후 30년이 체 되지 않은 초기에 집권층의 명분의 의도가 명확한 정책 이었다.

이후 조선은 성리학을 기본 건국이념으로 삼으며 경제적으로 ‘사농공상’, 외교적으로 ‘친명배금’ 군사적으로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배척하는 풍조 등 이후 청나라보다 실용주의를 버리고 더욱 근본주의적 성리학 성향으로 빠지면서 망국의 길을 걸었다.

명나라 태조 홍무제
명나라 태조 홍무제 출처-wiki

일본 : 남북조 통일

조선 건국의 1392년 이전의 일본은 기쿠치 가문 등의 남조 세력과 잇시키 노리우지와 니키 요시나가 등의 북조 세력이 전쟁을 계속 하고 있었다.

이 같은 정세 속에 1392년 남조는 가네나가 친왕, 기타바타케 아키요시, 무네요시 친왕이 연의어 사망하여 남조의 정치적 안정이 흔들리는 계가기 된다.
남조의 고카메야마 천황이 북조의 고코마쓰 천황에게 3종 신기를 넘겨 남북조가 통일되었다. 
통일 후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문화적으로도 성장을 시작 한다.
곧 중국 명나라와 감합 무역이 개시되면서 조선 건국 시기 조선 과 명에 왜구의 약탈이 끈임이 없었다.

일본 고코마쓰 천황
고코마쓰 천황 출처-wiki

중앙 아시아

13세기 몽골은 아시아를 넘어 중앙 아시아까지 점령 하였으나 칸의 사망으로 쇄퇘를 거듭 하여 14세기엔 명나라에 의해 미리고 있는 형국 이었따. 중앙 아시아엔 몽골제국의 마지막 후예 티무르가 힘을 과시하였고 오스만 튀르크는 급 성장의 징후를 보이고 있었다. 지는 몽골과 뜨는 오스만 이엇다.

티무르 제국

크림반도에 티무르가 징기스칸의 후예임을 내새워 극적으로 권력을 잡고 그의 몽골족 정벌의 마지막을 장식 하엿다. 이 시기에 티무르 군대가 아나톨리아 까지 거침없이 진격해 오스만의 술탄 바예자르를 대파하고 생포하기 까지 하였따.

오스만 튀르크

조선 건국 이전의 13세기에 아나톨리아 서부의 군소 제후국에서 출발한 오스만은 13세기 말엽 이후 일신해 역동적인 제국 및 군사 강국으로 변모한다. 1389년 오스만제국이 코소보전투를 승리하여 발칸반도의 패권을 확립한다. 1402년 티무르 에게 앙카라에서 패배 하였지만 1405년 티무르가 사망 하면서 티무르 제국은 붕괴한다.

이어 마호메트 1세(1413~1421년) 오스만을 제건한 데 마오메트 2세에 의해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함으로서 고대부터 내려온 천년의 로마의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오스만이 아나톨리아 북부까지 세를 확대하는 한편 오스만이 세계 제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후 지금의 헝가리, 세르비아, 보스니아 지역을 정복 하게 된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입성하는 메흐메트 2세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입성하는 메흐메트 2세 출처 – wiki

결론

조선 건국 시기에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던 중국, 일본, 중앙아시아 의 역사의 맥락도 함께 들여다 보았다. 포스팅을 하며 매우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고, 요동정벌을 진행했다면 불필요 하지만
만약의 역사도 상상해 보았다.

이렇듯
조선 건국의 시기에 명나라는 최후의 한족으로서 중원을 통일 하였고 일본 역시 남 북으로 나누어 치열하게 싸웠던 역사를 마감하고 통일을 이루었다.
오스만튀르크는 급성장 하여 향후 유럽, 중앙아시아의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
이렇듯 아시아의 세력이 뒤바뀌는 급변하는 정세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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